그곳엔 먼저 와 일하고 있던 두분이 계셨는데 농장안에서 거주하지 않지만 사료와 우유를 실어나르는 3살터울 형과 나와 같이 지내며 농장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던 50대 후반의 아저씨 한분이 계셨지 형도 착하고 재밌는 사람이었고 그 아저씨분도 강원도 사람이라 그런지 아주 인자하시고 좋은 분이었어 좋은 사람들과 숲의 향기를 느끼며 자연인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숲의향기? 사실 소똥내 쩔었음) 처음 올때부터 느낀거지만 까마귀가 어찌그리도 많던지 전체적으로 무언의 스산한 기분도 들고 소와 개들이 왠지 겁에 질린듯한 눈빛에 괴리감도 있었지만 몇주 지나서는 그것도 다 잊고 모든게 만족스럽기만 했었지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까마귀 떼들 빼고. 그러다 어느날인가 소들에게 사료를 먹이고 씻고 티비좀 보다 자야지 하는데 아저씨가..
다행히도 무심천은 물이 좀 많이 불어도 유속이 빠르지 않은 편이었고, 또한 그나마도 많이 줄어든터라 여자가 구할 정도는 되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은 모양인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아 차라리 물을 덜 먹었고, 물에 떠내려가면서 어디에 부딪히지 않은 모양인지 상처도 없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 자주 꿈을 꾸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새하얀 손들이 촉수처럼 길게 뻗어나와 내 몸을 붙잡는 꿈이었다. 하지만 악몽같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너무 오랜시간 자주 꿈을 꾸어서 그런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도 않했다. 몇년이 지나 부모님은 원래 청주에서 하던 일을 접고 상경하셨고, 덕분에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집안의 막내였던 나를 매우 아끼셨고, 나도 할머니가 좋았다. 그렇게 한동안 시..
그 집은 연탄을 쓰는 집이었고 부엌 쪽에 연탄 피우는 곳이 있었습니다. 집의 분위기나 환경이나 생각보다 너무 안 좋아서 저희 아버지께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지만 이사 온 거 한번 잘 살아 보자라는 마음이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사한 당일 밤부터 아버지께서는 가위에 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부엌과 연결된 창문에서 알 수 없는 시커먼 무언가가 흘러들어와 저희 아버지를 누르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위에 눌리지 않기 위해 자는 방향도 바꿔보고 자리도 옮기셨지만 가위에 계속 눌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선 전혀 모르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제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무더운 여름 8월 중순에 태어났는데요, 제가 태어난 뒤로도 아..
8월초 진짜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저희 학교 선배(이후로는 a형)가 간부수련회를 갔습니다. 단대(단과대) 회장이였던 a형은 만반의 준비를 햇죠. 사전답사도 가서 2박3일 동안 뭘 할건지도 뭘 먹을건지도 다 준비를 했죠. 각 학과의 집행부와 단대 집행부까지 토탈 36명이 출발을 했습니다. 지리산으로 향했습니다. 놀기에는 계곡이 괜찮다 싶었던 거죠. 도착을 했고 물놀이를 미친듯이 했답니다. 그 날 저녁은 술이 떡이 되도록 먹고 뻗었데요.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오후 준비된 시나리오에 맞춰 재미나게 놀았고, 그날 저녁 즉, 마지막 밤에 폐가 체험을 하기위해 준비를 했답니다. 마침 캠핑을 하고 있던 곳에서 5분여쯤 되는 산속에 폐가가 한채 있더래요. a형이 사전 답사를 갔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폐가였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