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사람의 반이었던 나는 상당히 많이 나머지 수업을 했던 게 당연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 입학하고 1개월 쯤 지났을 때, 교실에 남아서 밤 7시까지 묵묵하게 담임 담당 과목 프린트물을 하고 있었어. 프린트물이 무사히 끝나고 교무실에 있을 담임한테 가려고 교무실 문을 열고 소리쳤어. 나[안녕하세요. ○○선생님 계신가요?] 교무실에는 선생님이 2~3명 정도밖에 없었어. 제일 앞에 있던 여자 선생님 말로는 담임은 집안 사정 때문에 퇴근했으니까 프린트물은 책상에 두고 가라더라. 프린트물을 책상에 두고 교무실을 나가려고 했을 때, 승강구는 닫혔으니까 비상구로 나가란 말을 들었어. 이 학교는 7시에 승강구가 닫히도록 되어있어. 그래서 나머지 수업을 하는 학생은 신발을 들고 비상구로 나가야돼. 비상구는 각층 ..

엄마 옆에 하수구에는, 우리가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엄마가 쏟아낸 토사물이 점점 흘러들어가고 있었지. * 우리 엄마는 쌍둥이를 엄청나게 싫어해. 이유는.. 알고 싶지도 않아. 어렸을 땐 엄마에게 이유를 묻곤 했지만 이젠 정말 알고싶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무슨 일이 증오를 불러 일으킨 건진 몰라도... 쌍둥이를 향한 엄마의 공포는 엄마 인생에도 우리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어. 그 공포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까봐 무서워. 그리고 엄마가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 나일까봐 무서워. 나와 내 여동생에 대한 무언가가 너무 끔찍해서 우리 엄마를 평생 공포에 질리게 한 거면 어쩌지? * 우리가 십대가 됐을 때, 우리가 원나잇의 결과물이었다고 엄마는 내게 말해줬어. 그 날 엄마는 아주아주 취해있었고 남자의 번..

"우리 강아지 할미가 도깨비 애기 해줄까??" "도깨비?? 그거 무서운 이야기야 할머니?" "아니야 왜 할미가 우리 강아지 무서워하게 무사운 애기를 해 신기하고 재미있단다" 라고 하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할머니가 결혼하시기 전이니까 말씀으로는 마을 이장이 나라를 되찾았다고 뛰어다니던 그 해 겨울이라고 하신걸로 봐선 45년 겨울일 겁니다. 어느날 할머니의 부모님 즉 증조부와 증조모께서 싸우시기에 할머니께서 무슨일인가 싶어 보니, 집에서 사용하던 싸리빗자루를 버리네 마네 하시며 싸우시더랍니다. 증조부께서는 싸리나무 몇 개 꺽어오면 더 사용할 수 있으니 버리지 말자는 쪽이셨고 증조모께서는 20년 넘께 사용했으니 도깨비가 무슨 장난을 할지 모르니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는데, 증조부께서는 요즘 세상에..

3층은 계단에서 오른쪽으로 두 집이 나란히 위치했다. 그중 왼쪽이 해옥의 집이었다. 현 관문 상단에는 유성 매직으로 휘갈겨 쓴 301이라는 숫 자가 적혀 있었다. 집으로 향하던 해옥은 전단지와 우편물들이 계단을 세 칸이나 차지한 것을 보고 못 참겠다는 듯 한숨을 쉬었 다. 한쪽 발로 전단지를 밀어내고 자신의 집을 지나 4층까지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4층은 전체가 건물 주인의 집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해옥은 팔짱을 꼈다. 가래 끓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뉘쇼? 이 시간에.” “301호예요.” 찰칵,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앞머리가 훤한 50대 초반의 남자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 아가씨가 시간이 몇 신데. 날 밝을 때 놔두고 왜 매 번 이러는지 몰라.” “날 밝을 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