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 결혼식을 가장 좋아한다. 만약에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가을에 하고 싶다. 내게 연락해온 것은 신부 측 부모로, 2주 뒤에 다가올 딸 결혼식 촬영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원래 고용했던 사진 기사가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바람에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한 사진으로 남겨 줄 대체 기사를 급하게 찾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운이 좋았는지, 마침 나도 그날 일정이 없었다. 급하게 예약한 만큼 추가 금액을 세게 불렀지만, 신부 아버지가 차고 있는 롤렉스 시계를 보면 그리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으리라. 나는 가정형편을 잘 맞추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대로 맞췄다. 시라이츠 일가는 돈이 차고도 넘치는 집안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할 땐 편하다지만, 그렇다고 나를 고용한..
운전을 하고 있던 것은 나였지만 나는 겁쟁이였기 때문에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라면집에서 술을 한 잔 걸쳤기 때문에 조수석에 앉아 무책임하게 가벼운 말들을 던져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녀석이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이 고개에는 말이지, 여러가지 이상한 이야기가 있어.] 나는 들은 적이 없는 소리였지만 [뭔데, 뭐야? 무슨 이야기야?] 라고 물었다간 그 놈이 무서운 이야기를 해서 겁을 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흥미 없는 척 가장하고 [아, 그래.] 라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 녀석은 어째서인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2차선 도로였지만 반대편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겨우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전등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이었다. 말 없이 계속 달리고 있는..
당연히 놀랐지만 그래도 연애감정은 들지 않아서 그저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랬더니 소꿉친구는 평소처럼 "역시 틀렸나."라고 웃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주 휴일에 데이트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아무리 소꿉친구가 가족 같은 애라고 해도 내겐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다른 여자랑 데이트라니... 하지만 역시 죄책감이 들었기에 나는 받아들였다. 당일. 약속대로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 계획은 그녀가 세웠다. 달달한 분위기는 없었지만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는 길. 도중에 소꿉친구가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 내 부탁을 들어주어서 고마워. 무척 즐거웠어. 이걸로 미련 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자고 마음먹었는데...역시 안 되겠어. 나 역시 네가 좋아.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