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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와 에바는 완벽히 똑같았다. 너무도 똑같이 생겨서 구별하기 위해 손톱에 각기 다른

    색깔의 매니큐어를 발라주어야 했다. 유아기에 들어섰을때도 둘의 얼굴에 다른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성격면에서는 낮과 밤만큼이나 달랐다. 릴리는 누구에게나 잘 안기는 온순한 아이인 반면에 에바는

    항상 시끄러웠고, 모르는 사람 품에는 절대 안기려 들지 않았다.

    나는 쌍둥이를 애지중지했고, 개럿은 그 둘을 잘 참아주었으며 부모님은-예상한 바 였지만- 나와 개럿에게 그랬듯이

    쌍둥이에게도 정을 주지 않았다.

    나는 쌍둥이를 사랑했고, 애정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히 보살피려 노력했다.




    우리가 자라는 만큼 릴리와 에바도 성격형성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릴리는 여전히 낯선 사람앞에서 수줍음을 타는

    조용한 아이였지만 일단 친해지면 즐겁게 어울려 놀곤 했으며, 분홍색과 보라색, 바비와 포니를 좋아했다.

    에바는 여자아이는 분홍색이라는 원칙을 거부하며 사람들에게 혀를 내밀어 보이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아이로,

    수줍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같이 발레를 보냈는데 릴리는 좋아한 반면에 에바는 견디질 못했다.

    나는 엄마를 설득해 에바를 축구교실에 등록시켰고, 에바는 만족스러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바는 가벼운 반항을 시작했다. 첫째로 제인 이모와 토드라는 멍청한 변호사의 결혼식 날,

    꽃무늬 드레스를 입지 않겠다 선언했으며, 둘째로 토드에게 인사하지 않겠다며 성질을 부렸다.

    어느날은 머리카락을 다 잘라낸 후 "난 여자가 되고싶지 않아!"라고 비명을 지르며

    엄마가 바라는 완벽한 어린 숙녀가 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에바는 급조한 커트머리에 만족했고, 엄마는 그 애가 청바지를 입는 것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부모님이 싫어하는 남자와 데이트 하는 것으로 작은 반항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오스틴이 나이가 많아 싫다고 했지만, 실은 전문대를 졸업할 학비를 벌고자

    철물점에서 일하는 게 싫었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무시했다.

    모든 10대들이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게 가능하다고 믿듯이, 나도 그를 사랑한다 생각했다.

    집 근처의 대학에 합격도 했고 정식 남자친구도 생겼으니 내 미래는 그저 밝아 보이기만 했다.



    내 18번째 생일을 몇 달 앞둔 어느날, 모든 것에 급제동이 걸렸다.

    부모님은 자선행사인지 뭔지에 가느라 다음날까지 집을 비운다했고, 개럿과 나는

    몰래 빠져나가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다. 쌍둥이는 한밤중에

    깨는 일이 절대 없기때문에 괜찮을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개럿과 나는 새벽 3시가 다 되서야 집에 돌아왔다. 뜻밖에도 진입로에 오스틴의 차가 보였다.

    그는 집에 와달라는 내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문자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하자 그는

    메시지를 보여 주었는데, '내'가 새로 핸드폰을 구입해 번호가 바뀌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오스틴더러 간식이라도 먹고 가라 말하곤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자마자 에바와 릴리를 확인하러 윗층으로 올라갔다.

    침대가 비어있었다.


     

     

     



    10여분간 불이란 불은 다 켜고 집 근처를 돌며 소리를 지른 끝에 공포에 질린 채 911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고, 나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쌍둥이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집에 도착했을때 문이 잠겨있었냐고 물었다. 피로에 지친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전화를 돌려 지역을 순찰하라 명했고 경찰 중 한명이 우리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오스틴은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으며,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때 이미 집에 와 있었다 말했을 때 경찰의

    표정이 아직도 뚜렷히 기억난다. 경찰은 오스틴의 이상한 문자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끝마지치도 못한 채 새벽 5시경 쇼파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오스틴이 경찰서로 끌려가 취조를 받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상황이 빠르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히스테리컬해졌다.

    쌍둥이는 몇 시간째 실종상태이고, 이제는 내 남자친구가 용의자가 되버렸으며

    이 모든게 쌍둥이를 돌보지 못한 나의 잘못 이었기 때문이다.


     



    경찰도 릴리와 에바를 찾지 못했음을 미리 밝혀두겠다.

    집으로 돌아온 부모님은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질러대다가 경찰에게 소리를 질렀고, 결국엔 나에게 비명을 질렀다

    그 남자애 이상하다고 했지 다니엘라!!

    몇 시간이 며칠이 되고 몇 주가 되었는데도 쌍둥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집 앞에 있었다는 사실 외에는 범죄와 연결고리가 없었기에 오스틴은 체포되지 않았다.

    물론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내 여동생들을 죽인건 아닐까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런 의심이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18살이 된 나는 오스틴을 떠나 대학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지저분하게 갈라섰고

    개럿은 모든게 괜찮은 척 연기를 했으며

    나는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그게 5년 전 일이다.




    3주전 토요일 아침 눈을 떠보니, 엄마로부터 4통의 문자와 2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아빠의 문자도 한통, 개럿의 문자가 2통, 그리고 오스틴의 부재중 전화가 1통이었다.

    그를 못본지가 벌써 몇년인데 호출이 온 것이다.

    온갖 가능성들이 마음속을 내달렸다.

    혹시 쌍둥이를 찾은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쌍둥이가 죽었음을 인정한데다, 그 사건에 대한 죄책감도 지워버리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물론 심리치료가 필요하긴 했다)

     

     

     



    짐작했겠지만 쌍둥이를 '완전히' 찾지는 못했다.

    쌍둥이 중 한명만 발견되었고, 그 애가 둘 중 누구인지도 알 수

    없으니 완전히 찾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오스틴이 그 애를 발견했다. 그는 지난 5년간 매 주 쌍둥이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누명을 벗으려는 것도 있었지만, 그 애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들었다.

    그와의 전화통화는 이랬다;

    " 안녕, 다니-음.. 저기 숲 속을 수색하다가 쌍둥이 중 한명을 찾았어.

    미친소리 같이 들리겠지만 지금 네 동생이 내 무릎에 누워서 자고있어..

    방금 경찰한테 전화해서 경찰도 오고있는 중이야..

    네가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전화했어. 어..둘 중 한명만 찾았어.

    릴리인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아. 그냥 그랬다고 알려주는거야."

    나는 할 수 있는 한 빨리 집으로 날아갔다. 릴리 일수도, 에바 일수도 있는 내 동생이 영양실조와 탈수로

    누워있는 병원에는 부모님과 개럿, 제인 이모와 토드 삼촌, 심지어 오스틴까지 이미 와 있었다.

    동생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8살 시절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내 동생이었던 그 아이는 몸에 곡선이라곤 거의 없는 길쭉하고 마른 소녀가 되어 있었다.


    피부는 무서울 정도로 창백했지만 머리카락은 예전처럼 갈색이었고,

    눈을 떴을때 보인 눈동자도 여전히 청록색이었다.

    작은 문제가 있었다. 동생은 말하기를 거부했다. 온갖 진료를 다 해 본 결과 혀나 목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동생은 입을 열지 않았다. 종이에 이름을 적어주지도 않았으며, 그녀가 에바인지 릴리인지에 대해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았다. 손가락과 발가락에 화상을 입은 바람에 지문조회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의 지문은 말 그대로 불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병실에 아무도 없을때를 틈타 동생에게 눈물로 용서를 구했지만 그 애는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토닥일

    뿐이었다. 용서의 의미로 받아들이려 해도,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쌍둥이가 죽었을거라 믿었던 때가

    더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둘 중 하나가 살아있으니 나머지 한명도 살아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애들은 내가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을게 분명하다.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니? 너희 어디있었니? 누가 너희를 데려간거야?

    릴리인지 에바인지 모를 그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동생은 내가 옆에 있으면 행복해하는 듯 보였다.

    개럿,오스틴, 부모님이 있을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반기지 않는듯 했다.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눈도 거의 깜박이지 않고 토드삼촌을 가만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환자복을 입은 말 없는 십대소녀가 미동도 없이 쳐다보는게 무서웠던지 토드는 재빨리 병실을 떠났다.

    에바가 토드에게 성질을 부렸던 게 생각나 혹시 저 아이가 에바인가 싶었다.

    발견 당시 머리카락이 길었기 때문에 오스틴은 이 아이가 릴리일거라 추측했지만

    머리카락이란 자라기 마련이지 않은가. 5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마침내 우리는 동생을 집으로 데려왔다.

    첫 주는 동생의 건강을 되찾는데에 집중했다.

    나는 직장에 전화를 걸어 이 특수한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한끝에 한달의 무급휴가를 얻어냈다.

    동생은 먹지도 자지도 않는듯했다.

    멍하니 정면만 응시하는 동생을 보며, 무엇을 보았기에 눈빛이

    시체처럼 텅 비어있는지 궁금해졌다( 쌍둥이가 살해당한 걸 목격했겠지.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의 눈빛이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녀가 에바이건 릴리이건 간에 돌아와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나머지 한 명을 찾는 수사가 재개 되었다.

    그 동안 어디에 있었던건지 알아내려고 계속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오스틴은 단순히 숲 속을 헤매는 동생을 데려온 것 뿐이라고 말했다.



    오스틴은 쌍둥이들이 좋아했던 사탕을 들고 자주 집을 방문했다.

    나중에는 그 애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둘 중 한명이 좋아했던 것을 가져왔지만,

    동생은 어느것도 먹지 않았다.

    쌍둥이를 둘만 내버려뒀다는 죄책감에, 오스틴이 쌍둥이를 죽인 범인이라 의심했다는 새로운 죄책감이 더해졌다.  

    오스틴에 대한 동생의 반응을 보면 그가 쌍둥이를 납치했을거란 생각은 터무니 없을 정도였다.

    첫 주는 그런 기다림 속에 지나갔다.


     

     

     



    둘째 주에 들어서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치 파라노말 액티비티처럼 조명이 깜박거리고 문이 덜컹거리며

    제 자리에 놔둔 물건이 이상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거기에 정면을 응시하는 동생의 이상행동이 더해지니

    내가 자란 집이 전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공포영화 같은 현상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파이프가 삐걱거리고, 바람이 세게 부는 바람에 문이 닫힌거라 여겼을 뿐이다.

    제인이모와 토드삼촌이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조명이 깜박거리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지만,

    전구를 갈아야겠다고 생각했을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동생은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토드를 빤히 쳐다보았고 삼촌은 몹시 불편해했다.



    몇 시간 뒤 우연히 토드삼촌이 무언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들은건 문장의 끝 부분이었다.

    "...너야,"

    내가 방문을 열자 삼촌은 뛸듯이 놀랐다.

    토드는 여전히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침대에 조용히 앉아있는 동생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괜찮냐고 묻자 토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동생이 입을 열게 하고 싶었을 뿐이라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방에서 나갔고, 동생은 날 향해 눈을 깜박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갑자기 등 뒤의 문이 쾅 닫혀 이번에는 내가 뛸듯이 놀랐지만, 기압이 변했나보다 생각하며

    넘겨버렸다. 그렇게 둘째주가 끝났다.




    셋째주가 시작되었다.

    이제 내가 이 글을 쓰게끔 만든 그 사건에 다가가고 있다.

    동생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그림을 보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녀가 정면을 노려보는 것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했기에

    그림을 보지 못해도 개의치 않았다.

     

     



    조명이 깜박거리는 일이 잦아졌고, 나는 전선이나 차단기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내가 감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일이 생긴거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스틴은 여전히 우리 집을 찾았고, 어느 날은 내게 점심을 같이 먹자 청했다.

    "그냥.. 밀린 이야기나 하자고."

    나는 웃으며 그러자고 대답했다.

    동생은 식욕이 약간 생겨난 듯 했지만 여전히 창백하고 수척했으며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3일전 제인 이모와 토드삼촌이 다시 찾아와 하룻 밤 묵고 간다 말했다.

    이모네가 온 김에 오스틴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엄마와 이모가 와인에 취해 늘어놓은 이야기를 듣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스틴과의 좋다 못해 즐겁기까지 한 점심식사는

    제인이모와 쇼핑을 간다는 엄마의 문자를 받는 순간 깨어졌다.

    아빠는 출근했고 개럿은 학교에 갔으니

    집에는 동생과, 동생이 싫어하는 토드삼촌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영화나 보러갈까 했지만 대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듯 했지만,

    정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무언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팔뚝의 털이 일어서고, 뱃속에 공포가 가득찬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문을 열었을때, 그게 보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오스틴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건 토드였다. 토드가 10피트 높이의 천장 서까래에 목을 매고 있었다.

    줄에 매달린 그의 몸이 천천히 회전하다가 나를 향했을때,

    도려나간 눈과 피칠갑이 된 몸뚱이가 보였다.

    나는 뒤에 서 있던 오스틴을 밀치며 방금먹은 점심을 토해냈다.

    고맙게도 오스틴이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릴리!" " 에바!" " 어디있니!" 라고 소리쳤다.

    경찰에 전화해야 한다는 건 알고있었다.

    삼촌이 살해 당했으니 신고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무언가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나는 몸을 돌려 여전히 내 쪽을 향해있는 삼촌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가슴쪽에 피 뿐만이 아니라 무언가가 더 있었다.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목에 소름이 돋았다.

    토드의 가슴에 주방 칼로 종이 한장이 꽂혀있었다.

    그림이었다.

     

     

     


    한발짝 더 다가갔다. 피 때문에 종이에 그려진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종이 상단에 적힌 단어는 유추할 수 있었다. 주소였다. 토드의 주소.

    밑부분에는 토드와 제인의 차고가 도표처럼 그려져 있었다.

    차고 바닥 한 곳에 x 표시가 되어 있었고 그 옆에 x표시를 가리키는 화살표도 보였다.

    꼭 지도 같네.. 나는 생각했다

    오스틴을 소리쳐 부르자 그가 동생이 없어졌다며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지도를 가리켰다.

    "여기 가서 체크해봐야 될 것 같아."

    아직 머리 속 퍼즐이 맞춰지지는 않았지만 지도 속 장소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었고,

    당시에는 그 곳에 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것 처럼 느껴졌다.

    오스틴은 경찰을 먼저 불러야 한다고 했다.

    "좋아" 나는 말했다.

    "경찰 불러. 근데 여기 가봐야 돼."

    오스틴이 운전하는 동안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911 교환원에게 거실에서 벌어진 사건과

    우리집 주소,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고있는 곳의 주소를 말하고, 시체에 지도가 꼽혀있어서

    이 곳에 가봐야 한다고 횡설수설 이야기했다. 교환원이 차근차근 말해달라 부탁했지만

    나는 무시했다.(지금에 와서야 그때 내가 얼마나 비이성적 이었는지 알겠다)


     



    토드와 제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고의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차고문이 열렸다. 토드의 차가 없어서 일이 한층 쉬워졌다. 지도상의 x표시가

    차가 항상 주차 되어있던 자리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는 토드의 작업대로 반쯤 뛰듯이

    걸어가 큰 망치를 집어들었다.

    "다니" 오스틴은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다니, 너 뭐하는-"

    망치로 콘크리트를 때리는 소리에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었다.

    망치가 땅을 때릴때의 충격으로 이미 팔이 부들거리고 있었지만

    몸 속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나는 망치를 높이 치켜들고 다시 한번 차고 바닥을

    내리쳤다. 벌써 콘크리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다니, 도대체 무슨 짓이야"

    "가서 지렛대 좀 찾아봐!"

    나는 다시 망치로 바닥을 내리쳤고, 오스틴은 지렛대를 찾아왔다.

    망치로 부수고 지렛대로 파내는 작업을 10분쯤 더 한 끝에 콘크리트 밑에 숨겨진 나무 문이

    나타났다. 문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기에,문 가장자리가 보일때까지 파낸 후 지렛대를 문에

    끼워넣었다.

     

     

     





    냄새가 올라왔다.

    수년의 세월이 지난뒤라 심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느껴지기는 했다.

    문 아래 감춰진 비밀을 완전히 벗겨내기도 전에 풍겨오는 그 냄새가,

    나의 공포를 사실로 드러내 주었다.



    오스틴이 나무 문을 떼어내는 동안 나는 그 뒤에서 서성거렸다.

    토드가 쌍둥이를 납치해서 그 중 한명을 죽였어. 그리고 내 동생, 아직 살아있는 그 아이가

    토드를 죽였어. 하지만 대체 어떻게? 동생이 어떻게 토드를 천장에 매달 수 있었을까?

    왜 토드가 범인이라고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나무 문이 부러지며 열렸고, 나는 그 안으로 뛰어 내렸다.




    뛰어내리지 않더라도 차고 밑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을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다.

    "대체..." 나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동생이 분명 집에 있었는데.."




    구멍속에 쌍둥이의 시체가 있었다. 신데렐라 잠옷을 입은 릴리와 티셔츠에 바지 차림인 에바.

    작고 어렸던 시절의 릴리와 에바였다.

    하지만 어떻게 릴리와 에바일 수 있단 말인가.


     

     




    말했다시피, 이 모든 일은 3일전에 일어났다. 우리가 집에 데려왔던 그 소녀는 찾지못했다.

    토드가 어떻게 천장에 목을 매달 수 있었는지 알아내지도 못했다.

    조명은 더 이상 깜박이지 않는다. 쌍둥이 동생의 장례는 다음주에 치를 예정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소녀를 찾는다면 다시 글을 쓰겠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추가: 12시간 전에 이 글을 쓴 이후 큰 진척은 없었지만 몇 가지 의문이 생겨 글을 덧붙인다.

    1. 토드와 제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제인은 이 모든일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모는 지난 며칠 간을 술에 취한 채 현실을 부정하며 보냈다.

    2. 경찰이 차고 전체를 조사 했지만 다른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며칠 간

    집 부지를 파낸다고 하니 무언가 발견되면 업데이트 하겠다.

    3. 오스틴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5년전 일이니 말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문자를 보낸 번호는 없는 번호였고, 경찰은 오스틴이 본인한테 보낸 문자라고 의심했다.

    내 생각에는 토드가 주의를 오스틴에게 돌리려고 문자를 보낸 것 같다.

    오스틴은 나보다 3살이 많은데다 부모님이 그를 싫어했으니 완벽한 대상 아닌가.

     

     

     


    4. 차고 안의 시체 두구는 내 동생들이 맞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들이

    시체를 검안할 예정이다. 하지만 난, 그 애들이 릴리와 에바라고 확언할 수 있다.

    5. 집으로 데려왔던 그 소녀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토드의 또 다른 희생자가 탈출한 거라는 댓글도 봤지만 그러기엔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첫째로 그 작은 체구의 소녀가 어떻게 토드를 천장에 목 매달 수 있을까?

    (시체가 매달린 모양으로 봤을 때, 자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는 미신을 믿는 타입은 아니지만

    뭔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나 싶다.

    쌍둥이 중 한 명이거나, 쌍둥이 두명 모두가

    떠나기 전에 복수를 하러 온 것 아니었을까.

    (둘 중 한명이라면 에바이지 않을까. 그냥 떠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 것이다.)

    6. 토드가 그 소녀와 무슨 대화를 나눈건지 아직도 너무 궁금하다. 그는 소녀가 쌍둥이 중

    한명이 아님을 이미 알고있었다. 소녀의 정체를 물은 것일까, 아니면 협박한

    것일까? 그 아이가 우리 가족을 이용한다고 생각해서 위협해 쫓아내려 한 것일까?

    아직도 알 수 없다.

    7. 지도 외에도 아무렇게나 휘갈긴 그림들이 몇 장 더 있었는데 그 중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추가/업데이트: 5일 뒤.

    시체검안과 토드의 뒷마당 발굴 작업을 통해 2가지 주요한 사실들이 발견되었다.

    1. 시체검안결과 : 릴리와 에바의 시체가 맞다. 사망시기는 약 5년전으로 추정된다.

    2. 뒷마당 발굴 작업 : 뒷마당에서 시체 한 구가 더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나와 아무

    연관이 없기에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지만, 지역 실종 아동 보고서를

    조사해 보았다. 토드가 이사온 시점인 8년전부터 훑어보니, 대부분이 가출 청소년이었고

    양육권을 뺏긴 부모가 아이를 납치한 사례가 몇 건 있었다. 3년 전 8살 소년이 실종된 사건이

    1건, 작년에 4살 소녀가 실종된 사건이 1건 있었지만 이 아이들이 그 소녀인지는 알 수 없다.

    이 건에 대해서 더는 알아보지 않을 생각이다.

    어쨌건 실종아동들은 다른 사람의 아이인데다 나와는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3. 미스테리한 소녀에 대해서는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4. 시체가 한 구 더 발견됨에 따라 경찰은 다른 주에 있는 토드의 옛 거주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 곳에서도 뭔가가 발견될 것 같긴 하지만,
    릴리와 에바의 이야기를 밝혀 줄 빛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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