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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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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이야기

     

    [앗수아까]

    오지탐험의 계기는 식물 연구가 아니라 곤충을
    연구하기 위함이었으나, 정글에 즐비한 독초 때문에
    곤충보다는 식물에 대해 알아가던 나날이었다.
    독충이든 독초든 단련된 피부 덕에 끄떡없어하는
    현지 원주민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우리가
    근처라도 갈라치면 괴성을 지르며 가로막던 식물.
    그들이 ‘앗수아까’라고 부르는 거대한 주머니를 가진
    식물이었다. 항상 조심해서 다니느라 허리 필 새가
    없는 정글 속 유일하게 혼자 넓은 땅을 차지하고
    넓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식물. 그러나 원주민의
    반응 탓에 우리는 앗수아까에 접근하길 피했다.
    문제는 팀원 A양과 B군이 오지에서 동고동락하며
    사랑에 빠진 것. 거기까지야 팀장인 내 소관이 아니기에
    그들의 애정행각을 눈감아주었으나
    어느 날 밤 뜨거운 혈기를 멈출 수 없었는지 손을 꼭 잡고
    마을 밖 으슥한 곳으로 향하던 걸 누군가 본 것을 마지막으로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정글에서 1주일을 더 체류했지만 수색은 허사로 돌아갔고,

     

     


    우린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연구 발표를 위해 자료를 편집하고 있는 지금..
    그간의 여정이 담긴 사진 속 마지막 날에 찍힌 앗수아까의 주머니가 어쩐지 딱 두 사람만큼 불룩하다..

     

    두번재 이야기

     


    [결혼기념일]

    “여보, 오늘 무슨 날인 줄 알아요?”
    “알지.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매년 이 날을 잊을 순 없죠. 늘 해왔던 것처럼 향을 피우고, 제사상을 차렸어요.
    기독교 신자인 저희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무슨 짓을 하고 있냐구요? 죄송해요. 설명을 안 드렸네요.
    저희 부부가 결혼하던 날 예식장에서 제공한 식사에 문제가 있었어요.
    뷔페식 요리 중 어느 것이 문제였던건지.. 손님 대부분이 쓰러지셨고,
    몇 분은 병실에서 그만 고인이 되고 마셨어요.
    저희는 그때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행복에 겨워있었는데..
    그 날의 충격 때문에 저흰 이렇게 향을 피우고 상을 차려서 그 분들의 넋을 위로한답니다.
    “이제 됐어. 치우자. 케잌 사왔어.”
    “와인도 하나 딸까요? 우후후.”
    처음엔 눈물로 사죄했어요. 갈수록 덤덤해졌고..
    죄송해요. 앞이랑 말이 다르죠? 저희도 별 수 없나봐요.

     

     


    우리 부부한텐 남의 일이고, 1년에 한 번 있는 결혼기념일인데
    언제까지 남의 집 제사를 같이 지내줄 순 없잖아요.
    저희 잘못도 아니고.. 할만큼 했으니까.. 이제 좀 잊고 싶네요.
    내년부턴 이런 귀찮은 일 안 할 거에요. 진짜 우리 잘못도 아닌데 짜증나.

     

     

     

    세번째 이야기

     


    [쌍둥이 병사]

    군대 상병 1호봉 때 얘기. 풀린 군번이라 밑으로 줄줄이 받아온지라
    딱히 신병에게 관심은 없었지만 중대에 나란히 도착한 쌍둥이 신병들은 겉보기만큼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들 집안은 꼭 귀신과 말하는 자식이 대를 걸러 하나씩 태어난다고 한다.
    즉 형제의 할아버지가 바로 귀신과 말하는 능력이 있었으니 쌍둥이 중 하나는
    그 능력을 이어받았을 것이라고 집안에선 얘기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말을 깨치고도 전혀 귀신과 대화하는 일이 없었는데, 그 이유가 사춘기 즈음에 밝혀졌다.
    형은 귀신이 보이기만 하고 들리진 않았고, 동생은 들을 줄만 알지 볼 줄은 몰랐던 것.
    그러므로 어느 쪽이든 귀신과 친해질 수 없었던 것이다.

    함께 경계를 서면 가끔 흠칫흠칫 혼자 놀라는 모습에 가끔 섬뜩하긴 했지만
    쌍둥이가 딱히 귀신이 어쨌다느니 얘기를 하는 편은 아니라 나중엔 그 모습마저도 익숙해졌다.
    안 무서워서 미안.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귀신과 통하는 초능력이 쌍둥이에 이르러 반반씩 갈라져 전해졌듯,
    어쩌면 우리들도 몰라서 그렇지 초능력이 작게나마 잠재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왜, 가끔 멀쩡히 살다가 환청을 듣거나 귀신을 봤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게 환청이나 환각이 아닐 수도 있단거지.

     

     

    네번째 이야기

     


    [빵셔틀]

    우스개로 빵셔틀 최고의 순간이라고들 하는 거..
    일진이 빵 사오라고 시킬 때 네 것도 사먹으라며
    돈 더 얹어주는 거.. 들어봤어? 왜 그러냐고?
    쩝.. 미안. 그냥 해본 소리야. 문득 생각나서.
    좀 들어줄래. 네 생각이 듣고 싶어. 그때 본 게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는지.
    중3 때였어. 일진 중에 김 모라고 있었거든?
    우리 반에 뚱뚱하고 느릿느릿한 박 모, 별명이
    밥샙이었는데. 밥샙한테 빵을 사오라는거야.
    매점에 안 파는 거, 문방구까지 뛰어가야 사올 수
    있는 피자호빵. 식으면 죽는다고 윽박을 지르니까
    애가 죽어라 뛰는거야, 그거보고 다 쳐웃었지.
    나도 웃었고. 근데 애가 안 와. 종 쳤는데.

     

     


    수업 중에 학교 뒤집어지고. 교통사고가 난거야..
    애가 트럭에 치였다고, 듣기론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상태가 심했다는데..
    선생님들이 바로 천으로 가려서 직접 본 사람은 한 명인가 그래. 걔가 말했지..
    아무튼 수업 중에 부장 쌤이 문 열고 그 얘기 처음 해줄 때,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김 모가 했던 말이 있어.
    “씨발, 내 빵.”
    어? 웃겨?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
    아냐. 나한테 사과할 건 없고.. 그냥 아직까지도 찝찝해.
    아무리 사람 취급을 안 했다지만 어떻게 반 친구가 다쳤다는데
    사람 걱정보다 지 빵 걱정을 먼저 할 수 있는 걸까?
    박 모 죽었다고 이미 부장 쌤이 말한 뒤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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