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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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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이야기

     

    [차원놀이]

    보람아 안녕~! 먼저 와있었네?
    어제 점심시간 때 애들이랑 봤던 글 기억나? 차원놀이!
    그거 그냥 이세계로 가는 법이라고 인터넷에 널린 구라 짜깁기한거야.
    내가 해봤는데 아무 이상없잖아. 이렇게 학교에 와서 너도 만나고.
    다른 차원은 무슨.
    근데 그거 자기가 하는 게 아니라던데?
    인터넷에 다른 글도 보니까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남이 보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고 같은 날에 시도하면 둘 중에 하나는 영영 가버린다던걸?
    그때 너랑 나랑 같이 보고 하지 않았나?
    네가 같이 하자고 했는데 봐! 둘 다 학교에 왔잖아. 그것도 제일 먼저!
    근데 기분 이상하긴 하다- 남을 없애는 주문이라니..

    저기.. 조금 이상하지 않아?
    왜 나한테만 그림자가 생기지?
    응? 사람 말 씹지 말고 대답 좀 해봐.
    뭐라고 좀 해봐..
    기분 이상해지려고 그래..

     

     

    두번째 이야기

     


    [원양어선]

    지금은 해양과학고로 이름이 대부분 바뀌었지만
    옛날엔 ‘수산고등학교’라고 하여 어선 항해사와
    기관사를 양성하던 학교가 있었다.
    아버지께서도 당시 수고를 나와 마도로스 생활을
    오래 하시다 어머니를 만나 뱃일은 그만두셨는데,

     

     


    배 타던 시절 이야기를 몇 번인가 내게 해주셨지만
    유일하게 지금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는 단 하나.
    “한 번 나가면 최소 반 년이고, 한국 오는데는 3년.
    고기는 잡을 때 잡아야지 때 놓치면 재미 못 본다.
    그땐 지금처럼 통신도 어렵고, 선원들 대우가 인간
    취급을 안 해줬다이가. 그때 우리 배 작업원 하나가
    크레인 작업 중에 상자를 떨구는 바람에 그대로 골로 가뿐기라.
    선장이 우리 앞에서 안 들어간다고, 고기 만선 시킬 때까진 못 들어간다고.
    우리가 힘이 있나? 완전 짜부가 된 사람을 조각조각 쓸어담아서
    최대한 사람처럼 반죽해서 냉동실 어창 구석에 놔두고 고기 또 잡았지.
    결국 반 년 지나서 회사에 사람 죽었다고 보고했다이가.
    모르냐고? 알아봤자 뭐 본사에서 뭐 어쩔긴데?
    사람 죽어서 싣고 다닌게 어데 자랑이가?“
    해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버지셨지만 왠지 냉동시킨 건 절대 안 드셨는데..
    그 기억 때문일까? 돌아가신 지금으로선 물어볼 길이 없다.

     

     

    세번째 이야기


    [부부 등산]

    물망초 정 마담인가 뭔가 하는 여자하곤 확실히 정리한 거 맞죠?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집에 저하고 애들이 당신만 바라보고 사는 줄 알면서 어떻게 그 여자랑 놀아나요.
    그 여자가 뭐 그렇게 예뻤어요? 딸까지 있는 아빠가 그렇게 색을 밝혀서야 되겠어요?
    그래도 정신 차렸으니까 용서해줄게요. 당신이 먼저 오붓하게 둘이서만 여행가자고 한 건 처음이니까.
    조금 감동 받았네요. 나란 여자 참 바보야. 그렇게 실망하고도 산에 가자고 했다고 벌써 풀려가지곤. 바보같이,
    눈물이 나려고 그래. 내 맘도 모르고. 됐어요, 과일은 무슨 과일이야. 내가 깎아줄게요.

     

     


    됐다니깐.. 뭐 그럼 좀 깎아줘요, 애들한테 말없이 나온 여행이니 사랑의 도피 느낌 나고 좋네,
    기왕 그러면 오늘은 공주 할래. 당신이 깎아줘요. 오늘은 누구 부인, 누구 엄마 안 할래요.
    저기, 그 칼 과일 깎기엔 좀 크지 않아요?
    과일도 잘 못 깎는 양반이 무슨 그런 칼을 쓰겠다고..
    저기, 잠시만, 여보, 왜 그래요? 여보,

    살려주세요..

     

     

    네번재 이야기


    [특효약]

    우리 집은 살림이 넉넉했다.
    덕분에 난 어릴 적부터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먹고 자랐고, 부족한 줄 몰랐다.
    그러니 좀 으스대는 편이었고, 버릇도 없었다.
    누나 셋 아래 막내아들인 나였으니 모두 오냐오냐,
    갈수록 개차반 짓을 하던 나는 급기야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안 먹었다.
    이 일로 아버지 심기를 건드렸지만 나는 막내아들을 내쫓으랴, 하며 더욱 땡깡을 부렸다.
    그럼 그렇지, 그 날 저녁에도 뜨끈한 고깃국이 나왔다!
    아주 맛있게 후루룩 비우니 ‘더 주랴?’하시며 내 그릇에 한 덩이를 덜컥 주시는데,
    “으악!”
    시골 깜둥이도 아니고 내가 애지중지하던 요크셔테리어 뽀삐가 대가리만 삶긴 채 담겨있는게 아닌가.
    그 날 이후로 나는 반찬투정을 부리지 않았지만
    부작용인지 고기를 입에 댈 수조차 없었다.
    그게 내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다.

    문제는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난 요즘, 무심코 아들 마음대로 하도록 놔뒀더니 반찬 투정이 심하다.
    피는 못 속인단건가.. 한 방에 해결할 방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 상관없는데..
    아들놈이 기르는 건 고양이라서. 뭐..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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