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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이야기

     

    서로의 학창시절, 20대, 30대 초반을 함께하며
    할머니 될 때까지 친구로 하하호호 할 줄 알았는데
    하루 아침에 정리가 되네요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는 자존감이 좀 낮고 소극적인 편이었고
    입시와 재수 실패 후 전문대 중퇴하고 바로 취직했고
    형편이 어려워 20대 초부터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서울에서 대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원 진학 했고
    현재 중소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면서 박사과정 중입니다
    저희집도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평범했고
    부모님 모두 지금까지 일 하시고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는 분들입니다

      

     


    친구는 친구의 월급으로 세식구 한달 벌어 한달 살이 하는데
    친구가 이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고
    옮기는 회사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심하게 피해의식을 갖고
    힘들어하더라고요
    안타까웠고 안쓰러운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동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십대 때는 그 친구가 남자친구가 여러 번 있었어서
    그 일로 힘들어할 때마다 얘기 들어주고 울고 난리치면
    토닥여주고 밤에 전화와서 울면 바로 달려가서 달래주고

    20대 때는 대학문제로 저와의 처지를 비교하며
    자기인생 망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할 때도
    혹시나 이친구가 자존심 상해하진 않을까 배려해줬고
    친구가 진짜 적성을 아직 못 찾은 것이라 생각해
    니가 좋아하는 거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에
    지금이라도 도전해봐라 뭐뭐 부터 시작해봐라
    진심으로 같이 알아봐주었고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게
    도와주려고 노력했어요

     

     

     


     


    그 때마다 친구는 자기는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라며(?)
    끝을 봐도 잘 될 것 같지 않기에 시작하지 않겠다며
    그렇게 학업을 포기하고 적성과 맞지 않는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구요

    이젠 그 분야가 너무너무 싫고 혐오스럽다면서도
    오래 버틴 것도 경력이라 다른 데로 가지도 못한다며 거의 매일 울고
    상사가 막말하고 자길 인간 취급도 안한다며 울고 울고..
    그 때마다 그렇게 힘들면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꿔보는 것도 생각해봐라, 예전에 너 ㅇㅇ쪽 알바 했을 땐
    즐거웠다고 하지 않았니 그쪽으로 다시 가보는 건 어때 하면

    이젠 너무 늦었다 다시 새로 옮기기 무섭다 부담스럽다
    그래도 나 여기서 꽤 잘 버티고 있는데(?)라면서 마치
    넌 그냥 내 얘기 듣기만 해 라는 식이 돼버리더군요

    서로 직장생활하며 카톡으로 거의 매일 연락할 때도
    늘 누구누구가 괴롭힌다 짜증난다..
    한 두달에 한번씩 만나도
    직장 얘기하며 울고 한숨쉬고 나 어떡해야되냐
    연애도 못하고 남자 만날 기회도 없다
    내인생은 왜이러냐 하는 친구 때문에 저도 점점 지치더라구요

     


     


    최근에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그러기에

    그래도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해준 친구니
    다 들어주고 그래도 지금이라도 니가 관심있는 분야로
    공부를 하든지 취미라도 가져봐라 쉴 때 집에서 우울해하지말고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예쁘게 꾸미고 예쁜 카페도 가보고
    전시도 가보고 기분 전환도 하고 바깥공기도 마시고 해봐라 해도

    자기 일하는 스케쥴 알고 그런 얘길 하냐며
    쉬는 날은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안 나가고 집에서 잠만 자야
    그래도 나가서 출근할 수 있는 거다 너는 좋은 환경에서
    배부른 소리한다더군요

    아까도 썼든 저희집도 좋은 형편 절대 아니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생활하면서 알바 계속 했고
    전공 진짜 죽을듯이 파서 첫입학 할 때 등록금 빼고는 쭉
    과 1등으로 장학금 받아서 충당했어요

    석사 박사과정도 제 욕심에 하는 거긴 하지만 직장다니면서
    틈틈이 공부했고 이건 한번에 충당이 안돼서 대출 받아 다니고
    있구요 그래도 이걸 하는게 제가 행복해서 하는 거에요

    현직장에서 어느정도 자리 잡은 것도
    취업할 때 이력서 정말 많이 뿌렸고 면접 수없이 봤고
    운이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친구한테 너는 아무것도 노력을 하질 않는데 네 지금 상황이
    바뀌길 바라면 안되는 거라고 저도 좀 화가 나서 뭐라 했더니
    세상 서럽게 울면서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그래도 너는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나도 그동안 너 우는소리 너 힘들다 소리 20년동안 들어주고
    받아주고 설령 객관적으로 니가 아닌 거 같아도
    니가 욕하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쉴드쳐줬는데
    이젠 나도 너무 지친다 했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라구요

    그리고나서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본인이 너무 예민했던 것 같다 내 상황 알지 않느냐
    그날 유난히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너까지 그러니
    자기가 좀 울컥했던 것 같다 하더라구요

    알겠다 하고 며칠 냉랭히 안부 주고받다가 그냥 풀었습니다

    저라고 힘든 게 없겠어요 저도 죽을만큼 힘들어서
    정말 생을 끝내려 했을 때도 있었고 실행했다 실패한 적도
    몇 번 있습니다 실제로 5년 넘게 치료도 받고 있구요
    떠벌일 일이 아니라 혼자서 삭였어요

     

     


    친구는 제가 담담히 치료받는다 얘기했던 날
    제 아픔은 정말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지
    나도 병원 좀 가봐야겠다 그거 진단서 바로 끊어주냐
    회사에 제출해서 내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지
    어필 좀 해야겠다
    이러더군요 그 순간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졌었어요..

    그간 저도 힘들어서 힘든 내색 좀 하려치면 친구는
    그래도 넌 나보다 잘 살잖아 넌 나보다 잘 나가잖아
    넌 나보다 환경도 더 낫잖아 나보다 나보다 ...

    그래서 어느순간 저도 제 얘기는 입을 닫게 되고
    친구는 제가 끊임없이 케어해줘야하는 사람이
    되어있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마전 제가 정신적으로 좀 많이 힘들고 불안해
    제가 좀 만나자하니 그 친구가 이땐 무슨 약속이 있고
    이땐 또 무슨 모임이 있고, 이땐 또 오랜만에 쉬는거라 나가면
    출근할 때 힘들 거 같다하면서 만날 날을 거의 두달 뒤 쯤
    가능할 거 같다며 얘기하더라구요
    만날 마음이 없구나해서 전 그냥 알겠다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힘든데 하나뿐인 친구도
    정작 내가 힘들 땐 거들떠봐주지도 않는구나 싶어
    순간적으로 절망에 빠졌고
    그래선 안되지만 습관적으로 나쁜 선택을 했어요

    그러고나서 친구를 어찌저찌 만나게됐는데
    얘기하다 제 상처를 보고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너 이거 뭐야? 뭐한 거야?! 하더니
    세상 혐오스럽단 표정을 하곤 또 그대로 가버리더라구요

    그 뒤로 연락이 없습니다
    저도 연락할 생각 없어요 기다리지도 않구요
    그냥 평생 갈거라 생각했던 인연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 같아 회의감이 듭니다

    마지막에 만났을 때 친구의 반응이
    저한테도 큰 상처로 남았어요 같이 울어달란 게 아니라
    적어도 너도 내가 몰랐던만큼 힘들었겠구나 해주길 바랐어요
    그동안 내 옆에 니가 있어줬으니 나도 니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겠다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친구한테 저는 한번도 위로 받지 못하고
    상처만 받았던 것 같아요
    어릴때부터 자주 아파서 병원에서 오래 지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선천적인 병으로
    2년에 한번 꼴로 전신마취하는 큰 수술을 여러번 했는데
    그친구는 단 한번도 병원에 오지 않았습니다
    온갖 핑계를 대며 못 온다했을 때도 그럴 수 있지 했지만
    병원에서 많이 울었어요

    제가 이러저러해서 힘들다 하면 그래도 넌 나보다 좋은 경우다
    난 너보다 더 힘들다 하는게 일상적인 패턴이었어서
    그런가하고 얘한텐 나 힘든 얘긴 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어느샌가 계속 혼자 속으로만 앓았던 게
    결국 곪고 곪아 터진 거 같아요

    허무해요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고 후회도 안 합니다
    함께 해온 시간들이 짧지 않은 세월이라 가슴 아프긴 해도
    이제라도 이렇게라도 정리가 되어 오히려 후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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