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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이야기

     

    작년에 아버지가 돈을 5천만원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버지는 대기업 아래서 하청업체를 하신다.


    아버지를 비롯한 직원들은 대부분 대기업 안에 있는 현장 사무실에서 지내고


    바깥 사무실은 경리 여직원이 혼자 일하고, 거기에서는 서류가 오고 간다.


    아버지는 사무실 책상에다 법인 통장을 넣고 열쇠로 잠궈두셨다고 한다.

     

     




    게다가 통장이 여러 개라 겉면에 비밀번호까지 적어두셨다.

    사무실에 침입해서 서랍만 딴다면 그 이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돈이 사라진 후에 일어난, 다소 기묘한 일이다.



    돈이 사라진 것을 알고 아버지는 황급히 경찰에 신고를 했고,

    형사들이 와서 사무실을 조사하고 은행에 가서 영상을 얻었다.

    우리는 CCTV 화면에 범인의 얼굴이 찍혀있기를 기대했지만

    정체불명의 남자는 대담하게도 ATM기가 아닌 은행 창구에서 현금을 인출했고,

    창구 CCTV는 멀리 있어서인지 작고 어둡게 나와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 돈 때문에 아버지 사업에 타격이 가진 않았지만

    쌩돈 5천만원을 날렸으니 부모님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어머니는 당시에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절에 가셨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절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에게 말씀하시길,

    아침에 절에 갔더니 웬 차려입은 부부가 외제차를 타고 오셨다고 한다.


     

     


    집 근처 절은 한때 성철 스님이 주지로 계셨을 정도로 큰 곳이라 유복한 신자가 많지만

    이들은 차림새라든지 언행에서 느껴지는 부티가 남달랐단다.

    평일 오전이라 절은 한산했기에 어쩌다 마루에 앉아 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부산에서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유명 음식점의 후계자인 장남이었다.

    그런데 이 장남에게 신이 내려 언제부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으로 남의 비밀이나 미래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내림 받아서 무당이 되자니 싫고 신내림을 받지 않자니

    무병 때문에 몸이 아파서 절에 다니는거라고 했다.



    내가 대학을 잘 나가진 않았지만 민속학만큼은 흥미롭게 들었는데,

    그 수업에서 무당에 대해 배운 게 몇가지 있다.

    신이 내리면 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신내림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신의 말을 전하면 신기가 더욱 강해져 몸이 더 아파온다.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무병을 앓다가 죽는 수도 있다.

     

     



    그리고 신내림을 갓 받았을 때 가장 영험하고

    무당을 업으로 삼아 손님을 받을수록 기운이 약해진다.



    어쨌든 그 남자는 신내림을 받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부인은 남편의 신기가 강해지지 않게 남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단속했다.

    근데 그 남자가 뭔가 말하고 싶어서 자꾸 부인 눈치를 보더라 한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화장실에 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불쑥 그 남자가 튀어나와

    "집에서 돈이 나갔지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놀라서 그렇다고, 도대체 누가 훔쳐갔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부인이 눈치챌까 두려워 사방을 흘깃거리며 빠르게 말했다.



    "돈 찾지마. 돈 안 나갔으면 당신 남편 칼에 찔려 죽었어.

    그거 사무실 여직원이 훔친거야. 그 여자 개띠야."

    그리고 남자는 담배 한 대 피고 온 것처럼 다시 절 마루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급히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번 주에 그만 둔 여직원의 나이를 물었다.

    나이를 계산해보니 그녀는 개띠였다.



    돈이 아니었으면 목숨이 나갔을 거라는 말에

    어머니가 범인 찾기를 포기하셨기 때문에

    그녀가 돈을 훔쳐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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